2005년 06월 11일
알몸으로 사계절을 껴안는 사람들 앞에서
우리는 알몸으로 사계절을 껴안았다/ 이면우

겨울은 봄을 기다리며 견뎠다
여름은 잇대 올 겨울을 생각하며 참아야 했다
나날의 막노동은
쌀과 공납금, 몇 토막의 소금절이 생선
그리고 풀 먹인 이불 홑청의 평안을 보장한다
그 나머지는 텃밭을 일궈 자급할 것
가을에는 여편네랑 산으로 가
다람쥐가 놓친 알밤과 쑥소리를 거둬들였다
무어든 지나고 나면 견딜만하게끔만 무거운 법
새끼들은 무럭무럭 자란다
나는 새벽이슬을 차고 도시로 나아가
그게 무어든 한 움큼씩은 꼭 움켜쥐고
밤과 안개가 깊어지기 전에
호숫가 우리의 오두막으로 서둘러 돌아왔다
그리고 여름에 나는 겨울을 예감하며 혼자 떨어야했다
봄은 기다리는 동안 언제나 더디 온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의 하느님께 초라한 제물을 올렸다
그리하며 알몸으로 사계절을 껴안았다


이 시를 읽었을때 내가 어떤 심리상태였는가는 벌써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때는 바빠서 포스팅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알몸으로 사계절을 껴안는 사람들' 앞에서 내 걱정이 부끄럽다는 생각을 했던 것은 기억이 난다.

취업을 하고 나서는 학생때보다 씀씀이가 확실히 커졌다. 지금은 내 동년배들보다 연봉도 높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불안이 무엇인지 약간은 배웠다. '무어든 지나고 나면 견딜만하게끔만 무거운 법', '여름에 나는 겨울을 예감하며 혼자 떨어야했다' 는 구절이 흘러가지 않았다.

예전이라면 이면우보다 채호기를 좋아했을 것이다. 지금은 반대다.

(이면우 시인에 관심이 간다면 시집을 서둘러 사두는 것이 좋다. 문지나 창비가 아니라 작은 곳에서 출간된 것이라 쉽게 절판될 지 모른다)
by nowhere | 2005/06/11 00:15 | Poem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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