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6월 25일
일기와 날씨
오늘은 햇빛이 내리쬐면서도 바람이 불어 상쾌한 날이다. 여름이면서도 그리 덥지않고 상괘하기란 장마 전의 며칠에만 허락된 행운의 날씨다.

이태준은 '문장강화'의 일기편에서 그날의 날씨에 대한 묘사도 따로 다루고 있다. 날씨란 우리들의 기분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던가. 날씨가 쾌청하고 좋은 날에는 평범하던 사물들도 좀 더 아름답게 보이고, 찌는 듯한 더위는 모든 것을 짜증나게 한다. 살을 에는 추위속을 걸어가다보면 눈에 눈물이 고여 내가 무엇이 그렇게 슬펐던가 생각하게 되고, 기온은 낮지 않아도 습기를 타고 추위가 뼈속으로 스며드는 그런 날씨에는 뭔가 처량한 기분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초등학교 일기에는 날씨를 쓰게 한 것은 그런 이유였나보다. 지금까지 나는 일기를 밀려서 쓰는 아이들을 적발하기 위한 방법이라고만 생각했다. 있었던 일이야 적당히 기억을 더듬어서 쓸 수 있다지만, 날씨는 도무지 생각이 안나지 않았던가.
그러나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어쩌면 그런 뜻이 있지 않았을까. 자신의 기억, 느낌, 생각이라는 것이 사실 자신이 인식하지 못했다해도 외부조건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인식시키기 위한 것.

그래서 오늘의 블로깅은 날씨에 대한 묘사로 시작했다.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사물을 긍정적으로 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읽는 이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혹시 아는가, 만약 잔뜩 찌푸려 비도 추적추적 오다말다 하는 날이었다면, 날씨에 대한 이태준의 말도 무덤덤히 지나쳤거나, 역시 옛날사람이라 고리타분하다고 치부했을지.

공정무사에 대한 환상이나 자부심보다 차라리 자신이 어떤 포지션에 있는지를 정직하게 밝히고 시작하는 것이 보다 객관적일 수 있는 것처럼, 블로깅에도 그날의 날씨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by nowhere | 2006/06/25 14:09 | 빈수첩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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